매일 보고 외우자

네 권은 써 봐야 세 권 쓰기 쉽다는 걸 알게 된다.

by 울부짖는백곰 | 2006/06/11 13:44 | 트랙백(1) | 덧글(22)

늦은 생일 파티

둘째 희창이의 생일은 11월 25일이다.(당시 나는 한국에 있었다) 25일 전에는 나도 중국에 전화를 걸어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줄 생각이었고 애엄마도 아이의 생일 파티를 해주려고 했다. 큰 애 호철이의 경우 환송회까지 겸해서 여러 번 생일 축하를 해주었고 그 와중에 희창이는 제법 부러움과 시샘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애엄마는 중국에서라도 거하게 생일 파티를 해주려고 했는데 그만...

마법에 걸린 것처럼 식구들 모두 희창이의 생일을 그냥, 무심코 지나쳐버렸다. ㅡㅡ;;

12월 초, 뒤늦게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물론 아이는 제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케이크를 맞춰 아이의 유치원에 보내주고 생일 선물을 샀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별로 라고 대답했다. 한국의 유치원에서는 꽤 즐겁고 흥겹게 해주는데 비해 이곳에서는 케이크를 자르고 노래 불러주는 것으로 끝인가 보다.





둘째 애가 다니는 유치원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 중국아이 한국아이가 함께 다니는데, 척 보면 누가 한국애고 중국애인지 알 수 있다. 스포츠 머리로 깎은 아이들이 중국애다.

늦기는 했지만, 그리고 한국보다는 별로였지만, 그래도 아이는 꽤 즐거워한 듯 했다. 유치원에서도 하루 종일 저 생일 모자를 벗지 않고 돌아다녔다니까. 어쨌거나 뒤늦게나마 생일 축하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크윽, 무슨 박노식 분위기가... ㅡㅡ;;)

 

 

by 울부짖는백곰 | 2005/12/23 18:36 | 트랙백 | 덧글(7)

월드컵 축구 조추첨 후 G조 국가들의 반응(펌)

 


프랑스 - '아싸 3승이다..'

스위스 - '프랑스 이기기는 좀 무리겠지?? 그래도 한국하고 토고가 있으니까 2승 1무 정도???'

토고 - '다행이다... 한국정도 잡고 스위스랑 비기면 16강 가능할수도...'

한국 - '일본 x됐다..낄낄낄'

..........

by 울부짖는백곰 | 2005/12/10 10:58 | 트랙백 | 덧글(7)

백곰 중국에 가다 2-3

1.
내가 굳이 대련으로 이주지를 정한 까닭은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대련에는 내 고등학교 친구 녀석이 먼저 나와 살고 있다.(녀석에게도 내 아들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 둘이 있다.) 이미 이곳에서 4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국에 적응하는 문제나 혹은 학교 과정에 대해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희창이는 유치원에 보낸다치더라도 큰 애 호철이가 문제였다. 이 녀석을 곧바로 중국 초등학교 1학년에 편입시키느냐, 아니면 학원에 보내느냐, 아니면 유치원에 보내서 1년 정도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친구 녀석과 대련의 한국 사람들은 애가 힘들더라도 차라리 학교에 보내는 게 낫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3개월 일찍 들어온 한국인 부부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붙잡고 꽤 많이 울었다면서도 그게 낫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
먼저 중국에 들어온 애엄마가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 왈, 이 아이는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니까 우선 병설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적응 과정을 둔 후에 학교로 편입시키는 게 좋다는 거다. 그럴 듯한 말에 수긍하고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그날 호철이는 유치원에서 울었다.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를 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이곳 유치원은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다. 초등학교는 더 빡세다. 그 긴 시간동안 혼자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 버렸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당시 한국에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후회했다. 차라리 느긋하게, 1년 꿇릴 생각을 하고 학원에 보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청도로 이주한 애엄마 친구는 그렇게 하고 있단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호철이와 전화를 하며 달래주고 위로해줬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돼. 그러면 금방 선생님 말을 알아듣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호철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알았다고 대답한다.

3.
며칠 후, 새로 대련에 온 한국인 아이가 그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호철이처럼 중국어는 전혀 못하는 녀석이다. 애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화를 냈다. 왠 차별이냐, 했더니... 이쪽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거다. 애엄마는 득달같이 달려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교장 선생에게 따졌다. 교장 선생은 자기도 쑥스러웠던지 유치원 선생을 불러 호철이에 대해 묻는다. 애가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는 말에 교장은 다시 초등학교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호철이는 다음 날 또 울었다.

역시 스트레스다. 칠판에 적는 글은 한자요, 선생이 말하는 건 중국어다. 하나도 못 알아듣고 따라적을 수도 없다. 알림장의 글은 두어 자 따라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져온다. 숙제는 물론 할 수 없다.

힘들기는 애엄마도 마찬가지. 내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또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얼굴 아는 학부모도 없다. 그러니 발만 동동 구르며, 한국에 있는 내게 전화해서 푸념할 수밖에.

잘못한 걸까.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갔어야 하나. 꼼짝하지 못한 채 방안에 드러누워 있어도 함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날 테니까.

다시 호철이를 달랬다. 지금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애엄마도, 나도 아닌 호철이다. 수업 시간 내내 우두커니 앉아서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들어야 하는 녀석의 처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싸해진다.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도대체 녀석은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 있을까. 이제 여덟 살 꼬맹이가 겪어야할 마음고생이란.
학교에서 울며 돌아오는 아이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는 한국인 부부의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때만큼 후회한 적이 없다, 여자 가랑이와 일은 벌리고 보자 라는 내 신조에 대해서. ㅡㅡ;;

어쨌든 나는 녀석을 달래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착한 녀석은 고맙게도 그 다음 날부터 울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빨리 중국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4.  
물론 호철이에게는 중국어 가정교사를 붙여 주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한 시간은 어문 연습, 한 시간은 숙제를 도와주는 시간. 이왕 일을 벌린 만큼 최대한 빨리 적응시키는 게 관건이다. 먼저 들어온 한국인 부부의 말을 빌자면 3개월 고생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적응력이 좋아서 3개월만 지나면 어느 정도 생활해 나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거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대련에 왔다.

5.
사실 내가 이곳에 왔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애엄마에게 달라질 건 없다. 나는 하루 종일 컴 앞에 앉아 있을 뿐이고 여전히 바깥 출입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하지만 뭐, 이제 시작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존재이니까.(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ㅡㅡ;;) 

by 울부짖는백곰 | 2005/12/08 13:50 | 트랙백 | 덧글(11)

백곰 중국에 가다 2-2

1.
한국에도 몇십 년만의 폭설이 내렸다고 하는데 이곳 대련도 마찬가지다. 43년만의 폭설이라던가. 초등학교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차들은 눈길에 막혀 오가지 않는다. 배달시켜 먹는 물도 차량이 올 수 없다고 해서 수돗물을 끓여먹기까지 했다.

이제 눈이 그치고 조금 날씨가 풀렸다. 그래도 춥다. 한국의 아파트에서는 반팔 티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닐 정도로 훈훈한 온기 속에서 살았는데 이곳은 두꺼운 츄리닝에 점퍼패드를 입고 있어야 한다. 그래도 한기가 온 몸을 파고든다. 특히 내 방은... 담배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문을 열어놓는 경우가 많아서 더욱 싸늘하다. 등 뒤의 난치는 미지근하고 콘크리트 바닥의 차가운 기운은 청양고추처럼 매섭기만 하다. 이곳으로 오기 전, 지인들이 맨 처음 조언했던 게 옥돌매트였을만큼 이곳 난방의 열악함은 대단하다. 게다가 날씨도 심한 경우 영하 21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단다. 오오, 무시무시한 요동반도다.

2.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올 때 컴퓨터 한 대를 더 장만했다. 용대운님이 조언해준 스팩(용대운님의 스팩인만큼 빵빵하다. 본체만 백만원이 넘는다. 젠장 ㅡㅡ;;) 을 동생녀석이 용산에 가서 맞춰왔다. 이사 전후 알다시피 나는 병원에 있었기 때문에 저 컴퓨터를 이곳 대련에 와서야 처음 볼 수 있었다. 처음 부팅하고 확인한 순간 황당했다. 이 컴은 하드 C와 플로피디스켓 A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디비디 드라이버는 어디 간 거냐. 그리고 왜 본체의 디비디플레이어는 열리지도 않는 거냐. 컴맹에게 이런 컴퓨터를 던져준다면, 말 그대로 쓰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 없는 이야기다. ㅡㅡ;;

3.
일주일동안 공짜로 인터넷을 사용한 후, 기술자가 와서 사용여부를 물었다. 반년은 500위안, 1년은 800위안이라네. 1년치 계약했다. 그리고 나서 두 대의 컴퓨터에 랜선(이곳에서는 콴따이라고 하는 것 같다)을 공유할 수 있느냐고 은근슬쩍 물었더니 공유기만 있으면 해 줄 수 있단다. 마침 한국에서 사 간 공유기가 있다. 공유기에 선을 꼽고 컴퓨터 조작 몇 번 하고 끝낸다. 이거 50위안을 줘, 100위안을 줘 하고 속으로 고민하는데 기술자가 먼저 말한다. 인건비 30위안이에요.

4.
어제부터 목발을 집어던지고 걷기 시작했다. 과할 정도로 절룩거리지만 그래도 목발을 사용하지 않으니 살 것 같다. 이제 허리 보조대만 벗으면 된다. 의사는 6개월 착용하라고 했는데, 보조대 가격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 사용해야 할 것 같다.


 



by 울부짖는백곰 | 2005/12/08 13:09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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