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2월 04일
야왕 2
온라인에서 별 생각하지 않고 써내려가는 글이라 허접한 곳이 많습니다. 모쪼록 양해하고 읽어주시기를. (모모님이 인터넷에 떠도는 글 대부분이 못쓴 글이라고 하시는 바람에 제 발 저리고 있습니다. ㅜㅜ)
보시겠습니까 ^^;;;
3.
서태지와 아이들도 없던 시절이었다. 들국화의 행진도 없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와 김기덕, ***(생각나지 않는다)이 낮의 라디오 세계를 양분하던 시절이었다. 콧노래로 흥얼거릴만한 팝송 두어 개 외우지 않고 있으면 창피스러운 시절, 한국 가수로는 유일하게 이문세가 날리던 그 시절의 우리는, 주말만 되면 이른바 빽판을 사기 위해 청계천 8가(6가일 수도 있다 ㅡㅡ;;)의 가게들을 섭렵했다.
빽판은 LP판을 불법 복제한 판을 가리키는 은어다. 음질은 형편없고 커버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가격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싸서 일반 LP판 한 장 살 돈으로 서너 장을 사고 차비와 간식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청계천 8가에서 살 수 있는 건 빽판만이 아니었다. 중고 LP판, 중고 전축, 중고 레코드 기기 등, 뮤우직에 관한 한 없는 게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울림의 1집 앨범과 양희은의 초기 앨범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단지 그것만으로 그 한 달 내내 행복했다.
빽판을 구입할 때의 요령도 있었다. 판의 겉면을 비스듬이 뉘여 살피면서 기스의 유무를 확인하고 홈이 고르게 파 있는지 살펴본다. 원 오브 싸우전드 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이 찍어낸 빽판 열 장 중에서 한 장 정도는 상당히 훌륭한 음질을 들려준다. 나는 그녀에게 빽판 구입하는 요령도 가르쳐주었고, 또 그 거리에서 사 먹는 닭꼬치 튀김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알려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정민하. 상투적인 서술로 표현하자면 백합처럼 하얀 피부에 꽃잎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을 가진 여자애였다. 발바닥클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기 있는 퀸카.
당시 나와 닭대가리는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때의 꿈들 중 하나가 우리들끼리 작사작곡한 노래를 가지고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핑크플로이드와 레드제플린, 섹스피스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프로그레시브 롹과 헤비메탈의 계보를 외우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시시껄렁한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는 동안 우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노래와 사랑과 열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민하는 도도하고 고고했다. 만인의 퀸카답게 그녀는 우리들 중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녀는 먼지처럼 앉아서 우리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이들 중 배짱 두둑하고 얼굴 두꺼운 몇 몇 녀석이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비밀리에 떠돌았다. 나와 닭대가리는 고개를 끄떡이며 그 소문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닭대가리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녀석 역시 데이트를 신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민하가 내게 말을 건네온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부는 가을날이었고, 나는청계천에 가기 전에 아이들이나 볼까 하고 복사집에 들렸다. 평소처럼 복사집 누나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브로마이드를 구경하고 있던 민하는 나를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며 아는 체했다.
"늦었네, 다른 아이들은 롯데리아에 갔어. 민하도 늦게 왔거든."
누나는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으음, 돈도 많아. 맨날 롯데리아야."
"그런 너는 맨날 판 사러 청계천에 가잖아."
"아, 이건 취미 생활이라구요. 햄버그랑 콜라 따위와 비교할 게 아니죠."
내 말에 누나는 피식 웃었다. 마침 인근의 여대생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와 누나와의 대화는 게서 끝났다.
어떻게 할까.
잠시 롯데리아에 가서 아이들과 잡담을 나누는 일도 매력적이었다. 풋내 나지만 그래도 평소 만날 수 없는 계집애들도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민하가 불쑥 말을 건네온 것은.
4.
그 해 가을, 우리는 평범한 고등학교의 2학년이었고 그녀들은 평범한 여고의 1학년이었다. 우리들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빵집과 분식집이었고, 단체 미팅은 고궁에서 하기도 했다.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어 "에, 본인은..." 하면서 티비에 나오던 그 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앓았다.
보시겠습니까 ^^;;;
3.
서태지와 아이들도 없던 시절이었다. 들국화의 행진도 없었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 쇼와 김기덕, ***(생각나지 않는다)이 낮의 라디오 세계를 양분하던 시절이었다. 콧노래로 흥얼거릴만한 팝송 두어 개 외우지 않고 있으면 창피스러운 시절, 한국 가수로는 유일하게 이문세가 날리던 그 시절의 우리는, 주말만 되면 이른바 빽판을 사기 위해 청계천 8가(6가일 수도 있다 ㅡㅡ;;)의 가게들을 섭렵했다.
빽판은 LP판을 불법 복제한 판을 가리키는 은어다. 음질은 형편없고 커버도 엉망이었다. 하지만 가격은 무지막지할 정도로 싸서 일반 LP판 한 장 살 돈으로 서너 장을 사고 차비와 간식까지 해결할 수 있었다. 청계천 8가에서 살 수 있는 건 빽판만이 아니었다. 중고 LP판, 중고 전축, 중고 레코드 기기 등, 뮤우직에 관한 한 없는 게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울림의 1집 앨범과 양희은의 초기 앨범을 구할 수가 있었는데, 단지 그것만으로 그 한 달 내내 행복했다.
빽판을 구입할 때의 요령도 있었다. 판의 겉면을 비스듬이 뉘여 살피면서 기스의 유무를 확인하고 홈이 고르게 파 있는지 살펴본다. 원 오브 싸우전드 까지는 아니더라도, 같이 찍어낸 빽판 열 장 중에서 한 장 정도는 상당히 훌륭한 음질을 들려준다. 나는 그녀에게 빽판 구입하는 요령도 가르쳐주었고, 또 그 거리에서 사 먹는 닭꼬치 튀김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알려 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정민하. 상투적인 서술로 표현하자면 백합처럼 하얀 피부에 꽃잎처럼 붉은 입술, 그리고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을 가진 여자애였다. 발바닥클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인기 있는 퀸카.
당시 나와 닭대가리는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그때의 꿈들 중 하나가 우리들끼리 작사작곡한 노래를 가지고 강변가요제나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핑크플로이드와 레드제플린, 섹스피스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프로그레시브 롹과 헤비메탈의 계보를 외우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시시껄렁한 영어 단어와 수학 공식을 외우는 동안 우리는 눈빛을 반짝이며 노래와 사랑과 열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민하는 도도하고 고고했다. 만인의 퀸카답게 그녀는 우리들 중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그녀는 먼지처럼 앉아서 우리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이들 중 배짱 두둑하고 얼굴 두꺼운 몇 몇 녀석이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비밀리에 떠돌았다. 나와 닭대가리는 고개를 끄떡이며 그 소문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닭대가리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녀석 역시 데이트를 신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 민하가 내게 말을 건네온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몹시 부는 가을날이었고, 나는청계천에 가기 전에 아이들이나 볼까 하고 복사집에 들렸다. 평소처럼 복사집 누나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브로마이드를 구경하고 있던 민하는 나를 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떡이며 아는 체했다.
"늦었네, 다른 아이들은 롯데리아에 갔어. 민하도 늦게 왔거든."
누나는 예쁘게 웃으며 말했다.
"으음, 돈도 많아. 맨날 롯데리아야."
"그런 너는 맨날 판 사러 청계천에 가잖아."
"아, 이건 취미 생활이라구요. 햄버그랑 콜라 따위와 비교할 게 아니죠."
내 말에 누나는 피식 웃었다. 마침 인근의 여대생 손님들이 가게로 들어와 누나와의 대화는 게서 끝났다.
어떻게 할까.
잠시 롯데리아에 가서 아이들과 잡담을 나누는 일도 매력적이었다. 풋내 나지만 그래도 평소 만날 수 없는 계집애들도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민하가 불쑥 말을 건네온 것은.
4.
그 해 가을, 우리는 평범한 고등학교의 2학년이었고 그녀들은 평범한 여고의 1학년이었다. 우리들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빵집과 분식집이었고, 단체 미팅은 고궁에서 하기도 했다. 군사 쿠테타를 일으킨 전두환이 대통령이 되어 "에, 본인은..." 하면서 티비에 나오던 그 해 가을. 나는 처음으로 사랑을 앓았다.
# by 울부짖는백곰 | 2005/02/04 15:41 | 잡설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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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펑크는 되게 늦게 얘기된 장르라서(그렇게 알고 있어서), 조금 쇼킹하네요.
섹스 피스톨즈... 소개는 돼 있었단 기억이...
초록불/남영동에는 있었더랬죠.^^;; 콜라 1,5리터 몰래 사가지고 들어가(물론 당시에는 리필이라는 게 없었기도 하거니와 돈도 아낄 겸) 몰래 몰래 따라 마셨습니다.
얼음칼/누나 이름을 써주면 여러가지로 좋아지죠. 읽기도 편하고 그 후에 현실에서 벌어질 여러가지 응징도 재미있을테고...
깊게닦자/안경 씁니다.
제 블로그도 아닌데 댓글을 무지하게 길게 적었군요. -.-;
위, 위험한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