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까지 나는 회사를 다녔다. 당시 내가 모셨던 사장은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울보 장관이었던 황산성과 동기였다고 했다.
조그만 회사였지만 제법 탄탄하고 내실있게 성장하던 그 회사는 결국 IMF라는 태풍 앞에 좌초하고 말았다. 회사는 감원을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써둔 원고가 계약된 나는 약간의 퇴직금을 더 받는 조건으로 기꺼이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때
그때 나는 일산에 살았다. 그리고 같은 동에는 회사 후배 동료가 살고 있었는데, 녀석은 가끔씩 놀러와 회사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결국 회사는 부도나고 알거지가 된 사장은 잠적하는 등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건, 내가 회사를 그만둔 지 1년도 되지 않아서였다.
글을 쓰면서 그리고 내 코가 여섯 자가 되면서, 한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추억이 갑작스레 떠오른 건, 아버님이 보여주신 한 장의 편지 때문이었다. 그 편지의 발신인은 바로 부도내고 잠적했던 옛날 사장의 이름이었다.
(은퇴하신 아버님은 화성시 사강이라는 동네에 집을 지으시고 내려가셨다. 그쪽 몇 분 어른들과 모여 소일거리로 공인중개사, 즉 복덕방 일을 하고 계시는데 편지는 그 복덕방 앞으로 온 것이다.)
편지에는 최고령 법무사인 자신의 소개와 약력, 그리고 최고령 법무사가 된 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경영하던 회사가 부도 났을 때의 감정. 이후 집을 날리고 알거지가 된 그가 가족들을 데리고 떠돌던 이야기. 친척들이 마련해준 지하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며 생활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바람 한 점 없는 지하셋방을 찾은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법무사 시험 공부하는 그를 보고 "너 정말 고생하는구나."라고 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생이라니. 몸이 불편한 아내가 생활비를 생활비를 벌고 두 아이들이 알바를 뛰며 학비를 버는 동안, 사지 멀쩡하고 튼튼한 나는 이렇게 편히 앉아서 공부하고 있어. 이게 왜 고생이야? 나는 평생동안 이런 사치를 누려본 적이 없다구. 알아? 지금 나는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놈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이라구."
결국 그는 공인중개사가 되었고 최고령 법무사가 되었다....
***
현실에 쪼들리고 일상에 치여 곤죽이 될 때, 나는 항상 마법의 주문처럼 외는 말이 있다.
지금이 바닥이야. 더 이상 추락하지는 않아. 이제 치고 올라가는 일만 남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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