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08일
백곰 중국에 가다 2-3
1.
내가 굳이 대련으로 이주지를 정한 까닭은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대련에는 내 고등학교 친구 녀석이 먼저 나와 살고 있다.(녀석에게도 내 아들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 둘이 있다.) 이미 이곳에서 4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국에 적응하는 문제나 혹은 학교 과정에 대해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희창이는 유치원에 보낸다치더라도 큰 애 호철이가 문제였다. 이 녀석을 곧바로 중국 초등학교 1학년에 편입시키느냐, 아니면 학원에 보내느냐, 아니면 유치원에 보내서 1년 정도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친구 녀석과 대련의 한국 사람들은 애가 힘들더라도 차라리 학교에 보내는 게 낫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3개월 일찍 들어온 한국인 부부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붙잡고 꽤 많이 울었다면서도 그게 낫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
먼저 중국에 들어온 애엄마가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 왈, 이 아이는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니까 우선 병설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적응 과정을 둔 후에 학교로 편입시키는 게 좋다는 거다. 그럴 듯한 말에 수긍하고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그날 호철이는 유치원에서 울었다.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를 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이곳 유치원은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다. 초등학교는 더 빡세다. 그 긴 시간동안 혼자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 버렸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당시 한국에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후회했다. 차라리 느긋하게, 1년 꿇릴 생각을 하고 학원에 보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청도로 이주한 애엄마 친구는 그렇게 하고 있단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호철이와 전화를 하며 달래주고 위로해줬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돼. 그러면 금방 선생님 말을 알아듣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호철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알았다고 대답한다.
3.
며칠 후, 새로 대련에 온 한국인 아이가 그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호철이처럼 중국어는 전혀 못하는 녀석이다. 애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화를 냈다. 왠 차별이냐, 했더니... 이쪽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거다. 애엄마는 득달같이 달려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교장 선생에게 따졌다. 교장 선생은 자기도 쑥스러웠던지 유치원 선생을 불러 호철이에 대해 묻는다. 애가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는 말에 교장은 다시 초등학교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호철이는 다음 날 또 울었다.
역시 스트레스다. 칠판에 적는 글은 한자요, 선생이 말하는 건 중국어다. 하나도 못 알아듣고 따라적을 수도 없다. 알림장의 글은 두어 자 따라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져온다. 숙제는 물론 할 수 없다.
힘들기는 애엄마도 마찬가지. 내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또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얼굴 아는 학부모도 없다. 그러니 발만 동동 구르며, 한국에 있는 내게 전화해서 푸념할 수밖에.
잘못한 걸까.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갔어야 하나. 꼼짝하지 못한 채 방안에 드러누워 있어도 함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날 테니까.
다시 호철이를 달랬다. 지금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애엄마도, 나도 아닌 호철이다. 수업 시간 내내 우두커니 앉아서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들어야 하는 녀석의 처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싸해진다.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도대체 녀석은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 있을까. 이제 여덟 살 꼬맹이가 겪어야할 마음고생이란.
학교에서 울며 돌아오는 아이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는 한국인 부부의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때만큼 후회한 적이 없다, 여자 가랑이와 일은 벌리고 보자 라는 내 신조에 대해서. ㅡㅡ;;
어쨌든 나는 녀석을 달래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착한 녀석은 고맙게도 그 다음 날부터 울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빨리 중국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4.
물론 호철이에게는 중국어 가정교사를 붙여 주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한 시간은 어문 연습, 한 시간은 숙제를 도와주는 시간. 이왕 일을 벌린 만큼 최대한 빨리 적응시키는 게 관건이다. 먼저 들어온 한국인 부부의 말을 빌자면 3개월 고생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적응력이 좋아서 3개월만 지나면 어느 정도 생활해 나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거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대련에 왔다.
5.
사실 내가 이곳에 왔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애엄마에게 달라질 건 없다. 나는 하루 종일 컴 앞에 앉아 있을 뿐이고 여전히 바깥 출입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하지만 뭐, 이제 시작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존재이니까.(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ㅡㅡ;;)
내가 굳이 대련으로 이주지를 정한 까닭은 일전에도 말했다시피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대련에는 내 고등학교 친구 녀석이 먼저 나와 살고 있다.(녀석에게도 내 아들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들 둘이 있다.) 이미 이곳에서 4년 정도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국에 적응하는 문제나 혹은 학교 과정에 대해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희창이는 유치원에 보낸다치더라도 큰 애 호철이가 문제였다. 이 녀석을 곧바로 중국 초등학교 1학년에 편입시키느냐, 아니면 학원에 보내느냐, 아니면 유치원에 보내서 1년 정도 적응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고민했다. 친구 녀석과 대련의 한국 사람들은 애가 힘들더라도 차라리 학교에 보내는 게 낫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3개월 일찍 들어온 한국인 부부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붙잡고 꽤 많이 울었다면서도 그게 낫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2.
먼저 중국에 들어온 애엄마가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교장 선생님 왈, 이 아이는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니까 우선 병설유치원에 들여보내고 적응 과정을 둔 후에 학교로 편입시키는 게 좋다는 거다. 그럴 듯한 말에 수긍하고 병설유치원에 보냈다. 그날 호철이는 유치원에서 울었다.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를 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이곳 유치원은 8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까지다. 초등학교는 더 빡세다. 그 긴 시간동안 혼자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 버렸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당시 한국에 있던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닐까 후회했다. 차라리 느긋하게, 1년 꿇릴 생각을 하고 학원에 보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청도로 이주한 애엄마 친구는 그렇게 하고 있단다.) 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하게 호철이와 전화를 하며 달래주고 위로해줬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돼. 그러면 금방 선생님 말을 알아듣고 친구들과 이야기할 수 있을 거야. 호철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알았다고 대답한다.
3.
며칠 후, 새로 대련에 온 한국인 아이가 그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호철이처럼 중국어는 전혀 못하는 녀석이다. 애엄마가 그 소식을 듣고 화를 냈다. 왠 차별이냐, 했더니... 이쪽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거다. 애엄마는 득달같이 달려가 이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교장 선생에게 따졌다. 교장 선생은 자기도 쑥스러웠던지 유치원 선생을 불러 호철이에 대해 묻는다. 애가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다는 말에 교장은 다시 초등학교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호철이는 다음 날 또 울었다.
역시 스트레스다. 칠판에 적는 글은 한자요, 선생이 말하는 건 중국어다. 하나도 못 알아듣고 따라적을 수도 없다. 알림장의 글은 두어 자 따라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가져온다. 숙제는 물론 할 수 없다.
힘들기는 애엄마도 마찬가지. 내 친구에게 조언을 구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또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얼굴 아는 학부모도 없다. 그러니 발만 동동 구르며, 한국에 있는 내게 전화해서 푸념할 수밖에.
잘못한 걸까.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갔어야 하나. 꼼짝하지 못한 채 방안에 드러누워 있어도 함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날 테니까.
다시 호철이를 달랬다. 지금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애엄마도, 나도 아닌 호철이다. 수업 시간 내내 우두커니 앉아서 전혀 모르는 외국어를 들어야 하는 녀석의 처지를 떠올리면 가슴이 싸해진다.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4시 반까지, 도대체 녀석은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앉아 있을까. 이제 여덟 살 꼬맹이가 겪어야할 마음고생이란.
학교에서 울며 돌아오는 아이를 붙잡고 함께 울었다는 한국인 부부의 심정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때만큼 후회한 적이 없다, 여자 가랑이와 일은 벌리고 보자 라는 내 신조에 대해서. ㅡㅡ;;
어쨌든 나는 녀석을 달래고 위로하고 응원했다. 착한 녀석은 고맙게도 그 다음 날부터 울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빨리 중국에 들어가기로 작정했다.
4.
물론 호철이에게는 중국어 가정교사를 붙여 주었다. 하루에 두 시간씩, 한 시간은 어문 연습, 한 시간은 숙제를 도와주는 시간. 이왕 일을 벌린 만큼 최대한 빨리 적응시키는 게 관건이다. 먼저 들어온 한국인 부부의 말을 빌자면 3개월 고생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적응력이 좋아서 3개월만 지나면 어느 정도 생활해 나가는데 문제가 없다는 거다. 이제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대련에 왔다.
5.
사실 내가 이곳에 왔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그리고 애엄마에게 달라질 건 없다. 나는 하루 종일 컴 앞에 앉아 있을 뿐이고 여전히 바깥 출입은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하지만 뭐, 이제 시작이니까. 그리고 가족이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는 존재이니까.(이건 나만의 생각일지도 ㅡㅡ;;)
# by | 2005/12/08 13:50 | 트랙백 | 덧글(1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jassu/그것도 능력되는 사람이나... 전 수천 편의 외화를 봤지만 아직도 영어가 젬병인데요.
정군/오케이. 애엄마가 안부 전하랜다.^^
정렬/네. 감사합니다.
현수/지금도 가르치기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