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이해에 대한 잡담

1.
타인과 친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심지어 살을 부비며 살아가는 마눌님도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 있는데, 타인의 경우에야 더더욱 그런 법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묘해서 어느 정도 친해지면 그 사람을 무조건 이해하려고 든다.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내 상식으로 재단하여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이르게 되면 당황해하거나 화를 내거나 외려 내 상식의 영역 안으로 그 사람을 끌어 당기려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대부분은 그렇게 시작한다.

2.
인간 관계에서 적당한 거리를 견지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나는 팔을 뻗으면 끌어안을 정도의 거리에 상대가 놓여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봐, 당신이 생각한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게 아니라구. 당신이랑 나랑은 적어도 서로 손을 뻗으면 손끝이 닿을까 말까한 거리에 있다구. 할 수도 있다. 나만의 착각인 셈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친한 것 같지 않은데 상대는 시도 때도 없이 친한 척 한다. 난감한 일이다.
상대와의 거리를 재는 능력도 재능이다. 아닌가. 사회 생활 하면서 혹은 그동안 살아오면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배우고 터득한 짬밥일 수도 있다. 아, 저 사람은 나와 이 정도 떨어져 있을 때 상대하기 편하군. 여기까지, 이 선을 넘어가면 금밟기가 되는 거야. 여기서 좀 더 다가가면 말 그대로 모모 작가의 <금 밟으면 죽어!> 라는 거지.

3.
사람 착하고 인간성 완벽하고 사교관계가 뛰어난 나도, 가끔은 저 선을 넘어오는 경우에 당황하고 황당해한다. 아니, 언제 봤다고, 언제 나를 알았다고 날더러 형님이니, 혹은 아우니 하는 거야? 내게 형 소리 들을 정도로 당신 대단한 거야? 내게 형님 할 정도로 나와 가까운 거야?
그래서 온라인 상의 친분관계는 쉽게 맺지 못한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 대해서 알게 된 연후에나 비로소 나는 상대에게 호형 호제한다. 그것도 매우 조심스럽게.
물론 나도 사람이다.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될 수 있겠다 싶어 마구 거리를 좁히다가 상대가 더 이상 다가오는 걸 원치 않는 기색을 느끼고는 흠칫 놀란다. 그런 실수를 몇 번이나 했지만 아직도 거리 간격을 재는 능력은 부족하다. 그만큼 거리재기란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물러날 줄 안다. 상대가 여기까지, 할 때 더 이상 접근하지 않는 영리함을 지녔다. 아니, 영리함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어느 일정한 곳까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초딩이라, 찌질이라 부른다.

4.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는 건 누구에게나 있는 노출증의 일면이고 배설 본능의 단면일 수 있다. 공개 블로그인 이상 누구나 읽고 리플을 달 수 있다. 하지만 거기에도 접근 가능한 범위가 있고 거리가 있는 것이다.
언젠가 말한 적이 있지만 굳이 남의 블로그에 가서 당신 의견은 틀렸어. 옳지 않아. 하고 리플 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낭비다. 정 아니다 싶으면 자신의 블로그에 반론글을 올리면 되지 않는가. 누구의 말마따나 제 블로그에서는 제가 왕이니까 말이다.

5.
나는 인터넷에서 만나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얼굴보지 못한 채 호형호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과 평생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함부로 말하거나 이것저것 이해하고 아는 체 하지는 않는다. 즉, 서로의 영역에 살짝 발을 담가도 괜찮을 정도의 아슬아슬한 거리라 할 것이다.
또 알게 된 지 제법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서로 존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과의 거리가 저 위의 사람들보다 멀리 떨어져 있냐 하면 그건 아니다. 사람에 따라 존칭하되 거리가 가까울 수 있고, 말을 트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게 또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 관한 오묘한 법칙 중 하나이다.

6.
나는 모님과 친하다. 적어도 손을 뻗으면 서로 닿는 거리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님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나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모님을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 내 사고방식과 무조건 같아야 하는 걸까. 아, 저 사람은 원래 저러니까 하고 그냥 인정하면 어디가 덧나는 걸까. 그 부분이 영 맞지 않으면 더 이상 서로 안 보면 되지 않을까. 원래 저런 사람, 괜히 뜯어고쳐서 나와 어울리게 만들 정도의 노력은 그저 제 애인에게나 하면 되지 않을까.

7.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만큼 내가 싫어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싫어하는 작가들을 굳이 만날 필요도 좋아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의 글이야 읽을 수도 읽지 않을 수도 있다. 글과 작가는 별개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글이 좋다고 해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작가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자 노력해야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지 않은가.

8.
한 걸음씩, 천천히 그 사람과의 거리를 좁혀나가는 맛은 짜릿하다. 원래 연애란 것도 그런 맛에 하는 게 아닌가. 더이상 좁힐 거리가 없어진 연애는 곧 신물나듯,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서로를 관찰하면서 느긋하게 좁혀나가자. 경험상,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거리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by 울부짖는백곰 | 2005/03/27 01:20 | 잡상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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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초록불 at 2005/03/27 07:36
좋은 글입니다...^^ 공감 100%
Commented by 김현 at 2005/03/27 12:49
아니, 연달아 공감글을... ^^;
Commented by kunoctus at 2005/03/30 01:10
진좌부부님들의 이글루 여파가 크네요. 그래도 사람 간의 거리에 대한 이야기들은 새삼스럽게 다가오네요. 왠지 요즘은 회사사람들 상대하는 게 제일 편하다는...
Commented by 울부짖는백곰 at 2005/03/30 13:23
폭주족/얼굴 잊겠다. 그나저나 보내준다는 책은?
소민/역시 얼굴 잊겠군요. ^^
김현/연달아 공감글이라면, 역시 그전에는 공감하지 않는 글이라는 말씀? ^^
Commented by 정든한숨 at 2005/03/30 21:30
서핑의 즐거움을 새삼 느끼게 하는 글... 공감가는 글..즐겁게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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